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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코스탈로니

코스톨라니는 누구인가?

by 요망진 독세기 2022. 12. 17.

 1906년 헝가리에서 출생한 그는 한평생 투자자의 길을 걸었다. 18세에 증권 투자를 시작한 이후 1999년 93세를 끝으로  80년간 세계를 누비며 투자자로 활동해 왔다. 1960년부터 프랑스와 독일 경제 잡지에 자신의 투자 철학에 대한 글을 쓰는 작가 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13권이나 되는 책을 출간하였고, 그의 투자 교훈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현재 '유럽의 워런 버핏', '투자의 대부'라 불리고 있으며 그의 투자 이론인 댤걀 이론은 아직도 많은 투자자들의 Motto가 되고 있다.

1. 성장

코스톨라니는 사업가인 아버지와 예술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33녀의 막내였고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으며 부다페스트 대학교에 입학하여 철학과 미술사를 전공하였다. 음악에 관심이 많아 피아니스트가 되는게 꿈이었지만 유태인 아버지는 증권교육을 배우기를 원했다. 결국 아버지의 뜻을 따라 192418세가 되었을때 아버지의 주식 중개인 친구가 있는 파리의 증권거래소의 주식중개인으로 취직되어, 기관투자자들을 상대로 주식, 채권 등의 거래를 도와주는 일을 맡았다. 이곳에서 그는 자신의 투자인생에 큰 영향을 준 동료 노신사를 만나게 된다. 견습생인 그에게 노신사는 "친구, 주위를 한번 둘러보게나. 주식보다 바보들이 많은지, 바보들보다 주식들이 많은지. 여기서는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네.' 라고 말했다. 그말을 들은 코스톨라니는 '주식시세는 곧 돈과 바보들의 심리'라는 간단한 공식을 정하였다. 여기서 바보는 개인 투자자들이며,  이렇게 모인 매수자와 매도자의 힘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가가 주식시장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한 촉이라는 것이었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수요와 공급의 원리' 그리고 '증권 심리학'으로 발전시켰다.

2. 투자 일화

그의 첫 투자는 고등학교 시절인데, 그 시절 유럽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투자 열풍이 불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자고 일어나면 물가가 2~3배로 뛰어오를정도로 인플레이션이 심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보가 생겼다하면 주식을 마구 사들이곤 했다. 그 당시에는 주워들은 말만 쫓아가도 부자가 될수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로부터 곧 해운회사의 시대가 시작된다는 얘기를 들은 코스톨라니는 오세아닉이라는 회사의 주식을 처음으로 매입했다. 그런데 그회사의 주가는 계속 떨어졌고, 우여곡절 끝에 시세는 다시 회복세를 그렸다. 그는 이 경험으로 주식 투자로 돈을 벌고자 할때 반드시 정보가 좋아야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습득한 이 교훈은 나중에 인생에서 두고두고 빛을 발하게 된다.

3. 투자 덕목

코스톨라니는 성공하는 투자를 위해 투자자가 가져야할 덕목들을 제시하곤 했다. 그는 80여년간 투자자의 길을 걸으면서 자신이 세운 '투자자의 덕목'을 늘 잊지 않았다. (경제적 자유를 얻으려면 투자하라), 생각(투자는 심리게임이다), 인내(투자하라, 그리고 수면제를 먹고 푹 자라), 그리고 행운(승리를 즐겨라), 즉 빚내서 투자하지 말고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하고, 자신의 결정을 믿고 지킬수 있는 인내심을 지녀야 하며 마지막으로 운도 따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투자로 성공을 거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앞서 말했던, '투자는 심리게임이다'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 중에 한 예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코스톨라니는 패전국이 된 독일의 국채를 아주 싸게 사들였다. 다들 히틀러의 죽음으로 독일은 망한 국가라 예상했고, 경제 회복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스톨라니는 달랐다. 독일의 잘못은 히틀러의 죽음과 함께 끝났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 정부가 부채를 적극적으로 갚고 재기를 시도하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그의 말대로 히틀러 이후 서독을 다스렸던 아데나워 장군은 정말로 독일 국채를 갚았고, 그는 무려 140배의 이익을 얻었다. 코스톨라니는 시장에 비관이 가득할때 매수할수 있는 투자 철학을 가진 투자가였기 때문이다. 

<출처 빗진BIT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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